상애원 발자취
1950년 민족 비극인 6.25 동란으로 인하여 온 국토는 폐허가 되고 가난과 굶주림, 질병과 부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으며 동족간의 살상으로 민족성은 황폐할대로 황폐해졌고 거리에는 부모 잃은 고아와 의지할 곳 없이 병든 노인들이 너무도 많은 참으로 민족 역사이래 최대의 시련기였습니다.
그런 전쟁의 와중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참전국과 외국원조를 받아 어느정도 수용보호도 하고 관심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노인들에게는 등한시 한 것이 그 당시 우리의 상황이었습니다. 고통 받는 자들, 그 중에서도 소외당한 거리의 노인들을 위하여 "돕는 손이 기도하는 입술보다 성스럽다"는 기독교적 사랑을 바탕으로 30대 중반의 젊은이 (故 김현식 이사장)가 원주 양로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들여 거리의 노인들을 보살피기 시작한 초창기의 규모는 수용건물 3동, 수용실 107평, 방 28개 수용정원 108명으로 그 당시 우리나라 양로원 중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보건사회 통계연보 1955~1957년 144쪽)
이렇게 큰 규모의 시설을 국가의 보조 없이 개인 힘으로만은 운영하기 어려워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노인보호를 위하여 1958년 3월 법인인가 (보사 제 82호)와 동시에 명칭도 상애원으로 변경하고 동년 6월에 시설설립 허가도 정식으로 득하여 오늘까지 70년간을 작은 사랑도 미약한 이들에게는 큰 은혜가 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한결같이 노인들만 보호하는 무료 시설만을 운영하는 시설법인으로서의 한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렇게 큰 것의 위대함보다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택한 상애원은 그동안 1천2백여명의 노인들에게 생의 마지막 안식처를 제공하였으며 오늘도 중풍, 치매, 노쇠 등으로 고통 받는 노인들 152명을 70여명의 직원들이 모시고 있습니다.
특히, 1992년에는 설립당시 위치했던 곳이 도시발전으로 인하여 번잡하여짐에 따라 도심을 벗어나 노후 생활하기에 적합한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공기 맑고 물이 좋은 현재의 위치에 토지 약 10,000평을 매입하고 무료 양로시설로는 어느 곳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623평의 양로시설을 국가보조 없이 자력으로 신축하여 나이 들어 살기에도 너무도 서럽고 고달픈 이 시대의 노인들에게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실천적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날로 심각해져가는 노인성 치매 문제에 대처하고자 1998년 11월에는 연면적 945평의 노인 전문요양시설을 국고보조(2,082,960천원)와 자부담 (대지 600평 339,115천원) 으로 건축, 개원하여 치매노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각종 사회문제와 가족해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노인에 대한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민, 관, 군 학생들을 자원봉사 자원으로 적극 활용, 교육하여 우리사회에 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였습니다.
또한 1999년 10월 2일에는 제 3회 노인의 날을 기념해서 전국 모범노인복지시설로 선정되어 대통령 단체 표창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2001년, 2003년, 2006년, 2009년, 2012년, 2015년, 2018년에도 노인복지시설 평가시 최우수시설(A등급)로 평가되어 우리 지역사회에서는 여러가지 면에서 대표적인 사회복지시설로 인정받고 있으며, 복지국가 건설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