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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육사 교장의 편지

작성자
김희찬
작성일
2010.07.2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931
내용
2004년 1월, 김충배 육군사관학교 교장은 숨이 턱 막혔다. 육사에 들어올 가(假)입교생 250여 명에게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대답했고, '북한'이란 대답은 33%에 그쳤다.

"장교가 되겠다고 사관학교를 지원한 학생들이 이 정도라니…." 같은 해 국방부 정훈기획실의 '입대장병 의식 성향 조사'는 더 기가 막혔다. 75%가 반미(反美)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장병은 단 36%였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그는 생도들과 면담하고 이유를 분석했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는 대답들이 많았다.

김 교장이 서독 광부, 베트남전 장병, 중동의 산업역군들에 대해서 얘기하자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기 일쑤였다. 그런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은 학교가 선택하고 있다는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구해 보고 그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북한을 슬쩍 비판하는 척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아니다"고 판단한 그는 직접 나섰다. 교내 강당에 생도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여러분들은 50·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아는가?" 그는 비장했다.

"1960년대 서독에서 시체를 닦던 간호사와 지하 1000m 아래서 땀을 흘린 광부들 덕에 오늘날 우리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는 '눈물의 강의'를 이어갔다.

때론 강당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그의 강연 내용은 '육사 교장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퍼졌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박정희 소장은 미국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 명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 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 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처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 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170불, 태국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었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 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 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 해?" 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 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던 간호사와 수 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 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들,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린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 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 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

우리들 신, 구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모두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고 다시 한 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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