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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제목

광휘 환상조

작성자
강소은
작성일
2012.05.2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601
내용
비가 천년의 석탑을 적시고
오늘은 또 삼복의 지열을 적시고
꺼져가던 환상의 조각들을 씻으며
이미 빈 공원의 의자에서
십년은 젊어진 내 얼굴의 때를
벗기고 있었다
점점 밝아지는 아랫도리마저 젖어 선
내 곁엔 어느새 잊혀졌던 과거의 장미가
환히 웃으며 섰다.
어쩌면
울고 선 아사녀의 전설을 읽고 있다
저쯤에서 비는 비껴 선 꽃잎을 찢으며
그 잔인한 웃음을 던지다 사라지고
문득 번개가 우뢰소리 더불어
천년의 종을 울리고 있다
탑신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놀란 장미꽃 이파리들이
내 발등을 덮고 있다
열기에 젖었던 아랫도리는 말라들고
다시 지열은 들떠서 비를 걷어가고
백랍같던 시벌의 하늘이
한때의 꿈처럼 구름을 태워가고 있다
내 곁엔 이국소녀가 석탑을 향해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쏘아대고
놀란 한 마리 금오조가
염천의 햇살 속으로 날아간다
잠자는 내 먼 눈을 쪼으며
달맞이꽃
풀잎이 찬 바람에 누워
별들을 세고 있는 강둑에서
꽃처럼 기운 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에 한 점 온기도 없이
이슬에 젖은 꽃잎을 떨굴 때
언덕은 조용히 일어나
마른 대궁이를 꼿꼿이 세우고
감기저린 바람을 막아내고 있엇다
비틀대던 욕망은
강둑에 떨어져 잘려나면서
손을 저었다, 너를 향하여
그림자 지운 적막한 언덕에선
시든 닮맞이꽃 그날을 웃고 섰는데
어쩌란가, 정말 어쩌란가
꺼지지 않는 불씨 하나
끝나지 않은 사랑의 연습을
강물이 열리고
잠든 평원에 강물이 열리고
우수 같은 첫눈이 녹아지면서
또 내리고 있는데
달맞이꽃, 그날 우리는
다시 역류의 언덕에서 바라보겠네
잃어버린 세월 마디를 풀며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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